[커버스토리] 탈북여성 성노예 고발 영국의회 서다




















지난 5월 20일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궁. 한국의 국회의사당 격인 이 건물 한 회의실에 영국 의회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모여 앉았다. 북한 인권 관련 활동을 하는 몇몇 활동가들도 함께했다. 외부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됐다. 외부에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영국 정착 탈북자들도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다리는 건 네 명의 탈북여성들. 김정아(43) 통일맘연합회 대표와 박지현 코리아미래전략 간사, 탈북작가 지현아씨, 탈북여성 변금시씨 등이었다. 이날 행사가 열린 계기는 한 인권단체의 조사 보고서였다. 영국의 탈북자 인권단체인 코리아미래전략(Korea Future Initiative·이하 KFI)은 같은 날 ‘중국 내 탈북여성의 성노예 문제(Sex Slaves: the Prostitution, Cybersex and Forced Marriage of North Korean Women and Girls in China)’란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 발간일에 맞춰 영국 의회의 북한문제공동위원회(APPG-NK·All-Party Parliamentary Group for North Korea·이하 공동위)가 청문회를 열었다.

KFI가 보고서 내용을 설명한 후 세 명의 탈북여성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는 순서였다. 탈북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이 끝날 때마다 피오나 브루스 하원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증언자에게 한국식 인사를 했다. 손을 모으고 몸을 깊숙이 숙였다.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브루스 의원은 공동위의 의장이다. 또 다른 공동 의장인 상원의원 데이비드 앨튼 경(Lord Alton)은 “탈북여성들이 끔찍한 일을 겪고 있다”며 “지구상에서 이런 일이 계속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공동위는 영국 의회 내의 의원 모임이다. 소속 당과 상관없는 초당(超黨) 모임이다. 데이비드 앨튼 경과 다른 영국 의원들이 2003년 9월 북한을 다녀온 후 결성했다. 공동위는 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1년엔 한국의 여야 4당에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북한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한나라당·민주당·자유선진당·민주노동당 대표 앞으로 서한을 보냈다.

앨튼 경을 비롯한 소속 의원들은 탈북자 인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대정부 질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영국 정부를 압박해왔다. 최근에도 브루스 하원의원은 영국 외무부 장관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중국 랴오닝성에서 체포돼 북으로 송환될 처지에 있는 9살 최모 양과 18살 김모 군 등 탈북민 7명을 구하기 위해 영국 외무부 장관은 어떤 조치를 취했나’라는 내용이었다. 이 질의에 마크 필드 영국 외무부 아태담당 국무상(차관급)이 답을 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중국에 현재 구금된 탈북민 7명에 관한 보도를 인지하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해 중국이나 한국 정부에 직접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한국 정부가 이들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을 합법적인 망명 신청자로 대우하고, 1951년 유엔난민협약 규정에 따라 송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중국 정부에 계속 강조할 것이다.’


한국 다음으로 탈북 정착자 많은 영국

영국 의원들이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KFI의 박지현 간사의 생각은 이렇다. “일단 영국은 기본적으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다. 북한 문제여서라기보다는 인권 차원에서 접근한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난민이 많다 보니 특히 난민 박해 문제에 민감하다. 의회의 공동위는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행사를 자주 연다.”

영국은 한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탈북자가 정착한 나라다. 약 670명의 탈북자가 영국에 정착했다. 박 간사도 북한을 탈북해 영국에 정착한 경우다. 박 간사 역시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강제결혼을 한 경험이 있다. 5000위안에 팔려가 아들을 낳고 살다 북한으로 송환됐다. 2004년 재탈북해 2008년 영국에 정착했다.

KFI의 이번 보고서는 이 단체 연구원들이 중국 현지에 직접 들어가 2년간 조사한 실태를 담았다. 성착취를 당했거나 현재 당하고 있는 탈북여성 45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했다. 박 간사의 설명이다. “직접 중국으로 들어가 조사하다 보니 위험한 점이 많았다. 중국 내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인권단체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 보고서를 읽으며 기자가 주목한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탈북여성들이 어디서 태어나 어떤 경로로 성노예가 되었는지 제한적으로나마 통계를 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분명 심각하다는 건 알려져 있었지만 중국 현지 조사 후 수치로 정리된 적은 없었다. 성노예화, 성착취에는 ‘인신매매 후 강제결혼, 성매매, 온라인 성매매’ 등이 포함된다. 중국 내 탈북여성 중 약 60%가 성착취를 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내 탈북자 구호활동가들의 의견을 근거로 계산한 수치다. 이들 중 50%는 성매매업소 등지로 팔려간다. 30%는 중국 남성과 강제결혼을 당한다. 15%는 온라인 성매매를 한다. 온라인 성매매(Cybersex)는 말 그대로 인터넷을 매개로 이뤄지는 성착취 행위다. 흔히 ‘몸캠’이라 부르는 노출 동영상부터, 인터넷 방송을 하며 시청자에게 돈을 받고 주문형 성행위를 보여주는 형태, 강제로 집단강간 등을 당하는 걸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행위까지 다양하다. 성노예가 된 경로를 보면, 중국 내에서 강압에 의해 당한 경우가 41%, 납치가 18%, 북한에서 강압적으로 당한 경우가 16%다. 중국 공안이 인신매매조직에 판 경우는 7%였다.

탈북여성이 겪는 성착취 유형들

보고서는 조선족과 한족 브로커, 인신매매범, 범죄조직이 중국 내 탈북여성을 이용해 올리는 수입이 최소한 연간 1억500만달러(약 1250억원)인 것으로 추산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계산법을 이용했다. ILO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브로커들이 성착취를 통해 여성 1명당 연간 약 1만2000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분석했다. 아주 낮게 잡아 중국에 5만여명의 탈북자가 있다고 계산하고 이 중 70%를 여성이라 가정해보자. 이 중 25%가 성착취를 당한다고 쳤을 때 나오는 숫자가 1억500만달러다. 문제는 중국엔 5만명이 훨씬 넘는 탈북자가 있고, 이 중 여성의 비율이 90%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50만명의 탈북자가 중국을 떠돌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탈북여성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성범죄, 성착취를 당하는 여성은 적어도 25%를 훌쩍 넘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니 1억500만달러는 상당히 낮게 추산한 금액이다.

둘째, 강제결혼과 강제 성매매에 동원된 탈북여성들이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 현장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 증언의 일부다. “14살이었을 때 중국에 사는 외가 친척이 나를 연변의 의류공장에서 일하도록 주선해줬다. 밤에 브로커와 강을 건넜고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도착한 후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걸 알았다. 36살 남성이 나를 2만4000위안(3500달러)을 내고 샀다.” “중국에서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는 식당에서 일했다. 그 식당에서 일한 모든 탈북여성은 강제결혼으로 팔려갔다.”

셋째, 탈북여성을 이용한 성매매는 물론 온라인 성착취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중국 전역에서 1000만명 이상의 여성들이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중국에서도 성매매는 불법이다. 성매매 산업이 중국 내 총생산의 6%를 차지한다는 분석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인터넷 보급과 함께 온라인 성매매, 성착취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채팅 앱을 통해 돈을 받고 노출 동영상을 보여주는 식은 차라리 애교다. 채팅방을 개설해 돈을 받고 관객을 입장시킨 다음 여성에게 성행위를 시키는 유형도 있다. 포르노 동영상도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실태 파악도 힘들 정도다. 보고서는 중국 당국이 2018년 1월부터 6월까지 일제 단속을 해 2만2000개 불법 포르노 사이트를 없앤 것을 예로 들었다. 당시 삭제한 동영상은 107만5000개였다. 9살짜리 탈북 소녀도 온라인 성착취에 동원됐다고 탈북여성들은 증언했다. 증언 중 일부다. “그 남자는 나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북한 소녀들을 보고 놀랐다. 두 명은 아직 가슴도 안 나왔더라. 나는 방으로 끌려들어갔다. 침대 앞에 책상이 있었고 그 위엔 컴퓨터와 웹캠이 있었다. 남자 네 명이 들어와 집단으로 나를 강간했다. 세 번째 남자가 강간하기 시작했을 때 내 질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다음부턴 기억나지 않는다.”

보고서의 증언자들은 성매매를 한 고객 중 상당수가 한국 남성이었다고 답했다. “대련엔 한국 사람이 많다. 우리는 그들의 호텔 방문 밑으로 광고지를 넣는다. 광고지엔 어떤 행위가 가능한지 한국어로 쓰여 있다. 한국 회사원들은 성매매를 위해 북한 출신 여성들을 원한다. 성매매를 하면서 남한 사람을 처음 만났다.” 이외에도 한국 남성과 관련된 여러 증언이 실려 있다.

보고서 내용과 탈북여성들의 증언을 들으며 영국 의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현아씨의 말이다. “탈북여성들이 인신매매 당한 후 다시 강제북송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춰 증언했다. 임신 3개월 된 아이를 마취도 없이 책상 위에서 강제로 낙태당한 제 경험을 털어놓았다. 중국이 과연 유엔 상임이사국 자격이 있는 나라인지 의원들에게 호소했다.”


옥스퍼드 대학생들 기립박수

의회 일정 후 김정아 대표와 지현아 씨는 옥스퍼드로 향했다. 다음날 열린 옥스퍼드 유니언(Oxford Union)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옥스퍼드 유니언은 옥스퍼드의 토론클럽이다. 1823년 결성됐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생 조직이다. 여러 명의 영국 총리를 배출했다. 전 세계 명사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는 걸로 유명하다. 엘리자베스 여왕,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말콤 엑스, 달라이 라마, 마더 테레사, 아인슈타인, 마이클 잭슨, 역대 미국 대통령 레이건, 지미 카터, 닉슨, 빌 클린턴. 방문자 명단 중 일부다. 한국인으로는 가수 싸이와 반기문 전 유엔 총장이 있다.

이날 탈북여성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180여명의 학생들이 강당을 꽉 채웠다고 한다. 회원이었던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웬만한 유명인이 오지 않는 한 원래는 좀처럼 만석이 되는 일은 없다. 그만큼 북한 인권 문제에 옥스퍼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았단 얘기다. 강연 직전 김 대표는 의외의 사실을 알았다. 김 대표와 지현아씨를 강연자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옥스포드의 중국인 유학생이라는 사실이었다. 김 대표의 말이다. “강연 전에 따로 와서 인사를 하더라. 중국인 학생이 초청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우리를 지지하든 안 하든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준 사람이 중국인 학생이라는 데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줬으면 좋겠다. 중국의 인신매매, 강제결혼 자체는 정말 나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가정이라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통일맘연합회 회원들이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강제 북송만이라도 안 이뤄지면 된다. 중국 정부의 북송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일 뿐 아니라 관련 중국인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다.’ 중국 학생들이 맨 앞에 앉아 얼마나 고개를 끄덕이는지 강연하며 힘이 나더라. 중국 학생이 중국의 치부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 김 대표는 학생들이 강연 도중 울었다고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울더라. 중국 학생들이 유난히 많이 울었다. 북송된 탈북여성들은 중국인의 아이를 가졌단 이유로 강제 낙태당한 거 아닌가. 주변에선 ‘중국은 절대 안 바뀐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중국에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학생들 때문이다.” 원래는 75분 예정이었던 강연은, 90분 동안 이어졌다. 강연이 끝나고 탈북여성들이 강당을 나설 때까지 모든 학생들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김 대표는 “그렇게 많은 유명인들이 찾아왔지만 기립박수가 나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북한에서 10년간 군복무를 했던 여군 장교 출신 탈북자다.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 2006년 탈북해 2009년 한국에 정착했다. 2015년엔 통일맘연합회를 결성했다. 제3국을 떠도는 탈북여성들과 그들이 북한과 제3국에서 낳은 아이들을 돕는 단체다. 몇 줄의 이력 사이사이로 많은 사건과 그만큼의 슬픔이 스쳐갔다. 탈북 경위를 조사하던 국정원 직원이 “드라마 쓰냐”고 말했을 정도다.

출신만 보자면 북한을 탈출할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는 청진 수산사업소 기사장, 어머니는 청진백화점 부기장(회계 총책임자)이었다. 풍족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랐다. 십대 어느 날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12살에 아버지를, 15살에 어머니를 차례로 병으로 잃었다. 부모 대신 의지하던 오빠는 군에 입대했다. 고모의 구박에 설움이 복받쳐 오빠가 있는 군부대로 찾아가기도 여러 번이었다. 부모님이 사실은 친부모님이 아니고 태어난 지 사흘 된 자신을 입양해 길러주셨단 사실도 그때서야 알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다른 가정에 입양됐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성인이 되기 직전이었다. 강제입양이었지만 도망칠 순 없었다. 두 번째 양아버지는 오빠가 있었던 연대의 정치위원이었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부모 없는 아이를 거둬 사회주의 미풍양속을 실천하라.’ 김정일 지시였다. 지시를 잘 따라서인지 양아버지는 김정일의 친필 서한을 받았다. ‘당신은 훌륭한 당일꾼입니다.’ 서한을 쥔 그는 출세를 거듭했다. 돌아가신 첫 번째 부모님의 집은 고모에게 넘어갔다.

큰딸은 북한에, 작은딸은 중국에

의대에 가고 싶었다. “꼭 의사가 돼서 네 몸을 돌봐야 한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김 대표에게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었다. 양아버지에게 떠밀려 군에 입대했다. 출신성분이 좋고 키가 작지 않아서였는지, 열병식 훈련조로 뽑혔다. 열병식은 구소련의 대열을 모방했다. 땅으로 내리꽂다시피 하며 걷는 특유의 동작 탓인지 참가한 군인들은 각종 질환에 시달렸다. 좌골신경통, 추간판탈출, 치질, 위하수, 저혈압, 간경변, 영양실조…. 더군다나 김 대표가 열병식 훈련을 받았던 1997년은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때였다. 훈련 도중 하반신이 마비돼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훈련에서 빠져야 했다. 네 발로 기다시피 다니면서 생모를 원망했다. 북한 체제를 원망하는 건 생각도 못 했다. 그때는 그랬다.

10년 군생활을 뒤로하고 결혼을 했다. 첫딸을 낳고 어느 날부터 남편의 폭력이 시작됐다. 북한의 가정폭력 문제는 심각하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7개월째, 맞다 쓰러져 아들을 조산했다. 아이는 열 달을 못 버텼다. 평양산원에 가면 살릴 수도 있다고 했다. 무작정 찾아갔지만 진료를 받으려면 1년을 기다려야 했다. 담을 넘어 들어갈까, 땅을 파고 들어갈까, 아이를 업고 사흘 동안 병원 주변을 돌았다.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 문득 등에 찬기가 돌았다. 맨손으로 땅을 파 아이를 묻었다. 강변 어딘가였다. 그대로는 살 수 없었다. 이혼을 하자 갈 곳이 없었다. 하나뿐인 오빠도 병으로 죽었다. 남은 선택지는 탈북이었다.

북한을 벗어나자 이번엔 인신매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탈북 브로커는 그를 중국 농촌의 한족에게 팔아넘기며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말했다. 갱단이나 성매매업소에 안 넘긴 걸 고마워하란 뜻이었다. 중국 남성과 결혼한 지 채 한 달이나 됐을까, 임신한 걸 알았다. 북한에 있는 전 남편의 아이였다. 중국에서 낳은 셋째 딸은 중국 남편에 입양아로 입적시켰다. 그렇게 해두면 혹시 자신이 북송되더라도 아이까지 북송되는 걸 막을 수 있겠다 싶었다. 언제 공안에게 끌려가 북송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중국에서도 살 수 없었다. 2009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에 정착하자마자 중국인 남편에게 연락했다. 한국에서 같이 살자는 제안도, 아이만이라도 보내달라는 부탁도 중국 남편은 모두 거절했다. 어느 날부터는 전화번호도 바뀌어 있었다. “엄마는 날 버렸잖아.” 마지막 통화에서 딸아이가 한 말이었다.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브로커도 보내봤지만 헛수고였다.

김 대표의 이 같은 사연을 취재하던 AP통신 기자가 딸을 만나보기 위해 중국의 마을을 찾아갔지만 마을 사람들이 낫을 들고 모여드는 통에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눴다. 벽지의 작은 마을인 데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친인척 관계로 얽혀 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북한과 중국에 아이를 남기고 온 김 대표의 슬픔을 이해해준 사람이었다. 김 대표가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통일맘연합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남편의 응원 덕이었다.

지난 5월 23일 귀국한 김 대표는 짐을 집에 가져다놓자마자 이화여대로 향했다. 대학원 수업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이화여대 경영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통일맘연합회 활동 틈틈이 대학원 수업을 듣고 남편과 함께 운영 중인 회사의 업무를 처리한다. “훗날 두 딸들을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가 답한 말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주변에서도 돕는다. 이번 영국 방문도 세계여성경제인협회 한국지회와 이화여대 동창모임에서 후원했다.

김 대표는 현재 남편과의 사이에 네 번째 아이를 낳았다. 이제 8살이 된 아들은 언젠가부터 밥 먹기 전 늘 기도를 한다. “북한에 있는 큰누나랑 중국에 있는 작은누나 빨리 만나게 해주세요.” 만약 운명이란 게 있고, 그걸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지금쯤 아이의 끈질긴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사출처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2&nNewsNumb=002559100001&fbclid=IwAR2Zwc2guV5ixcsEYsT8eIR5KaywPXQPMf-g1p9ZlSAkN4htgN0HBOvj-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