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아시아방송] 아들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영국, 캐나다 등지에 정착한 많은 탈북 여성들이, 북한과 중국 국경을 넘어 중국의 시골로 숨어들면서 인신 매매, 노예노동, 출산, 북송 그리고 재 탈북 후 정착하기 까지 중국과 북한에서 당하는 인권 침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증언합니다.

1)김정아: 북한 여성들이 탈북 하게 되면 대부분 제3국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먼저 당하잖아요

2)박지현 :팔려가는 곳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브러커, 중개인 한테도 성 폭행당하고 도망 칠래야 도망칠 수도 없고…

이렇게 인신매매로 팔려간 곳에서 탈북 여성들은 자의든 타의든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중국인 남편의 아이를 출산합니다. 하지만 중국공안의 마구 잡이 북송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다시 한국으로 탈출한 여성들은 정착 한 뒤 중국에 두고 온 자녀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탈북여성들이 한국에서 “통일 맘 연합회” 라는 단체를 만들어 중국의 자녀 찾기운동을 펴고 있는데요, 여성시대, 오늘은 탈북 엄마 들의 피맺힌 절규 “아들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 를 보내드립니다.

음악:

지난 2008년에 탈북한 북한 장교 출신 김정아 씨는 북한에 아들을 두고 중국으로 탈출하자 누군가의 신고로 공안에 잡혔습니다. 그런데 당시 북한 남편의 아기를 임신 한 것을 모르고 탈출한 그는 임신 사실을 안뒤, 북송 된다면 뱃 속의 아기와 함께 중국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자해를 시도합니다.

김: 내가 살아서 북한에 안돌아 간다 배안의 애기가 그때 100일이 된것을 발견헸습니다.

그러다 이를 지켜본 한 중국 남성이 거짓증언을 하고 김정아 씨를 15.000 위안에 사서 데려 옵니다.

김: 거기서 그 중국남성이 배속의 아이가 내 아이다라고 거짓 증언으로 경찰서에 풀려나 중국에서 2년 7개월을 경찰의 감시 속에서 살았어요

통일 맘 연합체를 결성한뒤 기자회견에서 한 증언 이었는데요.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한 통일 맘 연합 대표들이 지난 11월 유엔과 국제사회에 이 문제를 호소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 RFA 자유 아시아 방송을 찾았습니다.

김정아 대표는 중국인에게 팔려가 북한 남편의 아기를 낳고 살면서 북송의 위협이 항상 따라 다녔다고 하는데요,

정아: 여성들이 그 북송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국 집에서 다시 탈출을 해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겪습니다. 그때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이를 데려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런데 아이를 버리려고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이 북송 당하게 되면 어떤 인권 유린을 당하는지 북송 당한 이후 북한에서 살아서 돌아 올 지 죽어서 나갈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팔려간 중국 집에서 다시 대한민국으로 올 수 있다면 살수는 있습니다 결국 살기 위해 도망을 치는 겁니다. 엄마가 살아야 자식을 나중 에라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거기 있다는 겁니다.

중국에서 아기를 낳고 사는 탈북 여성들만이라도 중국 당국은 강제 북송 시키지 말라고 김대표는 호소합니다.

정아: 중국당국이 북송을 안 하면 우리 탈북 여성들도 중국에서 살수 있잖아요 적어도 내 아이가 있는데 아이를 버리고 싶은 엄마는 세상에 없죠. 한국에 와서 나중에 아이를 돌려달라 내 아이를 만나게 해달라 그리고 만나러 가게 되면 배신자 취급을 하는 거에요 네가 애를 버렸잖아 …

김정아 대표는 한국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지금 다섯 살짜리 아들을 키우면서 중국에 두고 온 딸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 하는 날이 많다고 가슴아파 합니다.

김정아: 저희 딸이 지금 현재 9살인데 그 남자분과 단둘이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 아이는 중국에 있는 그 분의 친 딸이 아니라 저의 친딸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빠는 북한에 있어요 어느 엄마가 지켜만 볼 수 있을 까요? 저는 제 딸을 찾는데 시간이 급합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 합니다. 제 딸을 하루 빨리 안을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통일 맘 연합회의 회원인 이영희 씨는 10년만에 중국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났는데 그 10년 동안에 한국인 남편에게도 말을 못하고 밤마다 이불 속에서 혼자 눈물을 흘린다고하는데요,

영희: 중국에서는 내가 한국으로 간 뒤 들어오라고 했죠 그런데 저는 한국에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에 공부해야되고 돈도 벌어야 하고 또 나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새 가정도 맞이 했고 이런 과정 속에서 실질적으로 그 중국의 아들은 마음속의 부담으로서 노출되지 않는 상처로 계속 남아 있던 거죠

영희 씨는 중국의 남편이 그 당시 한국에 가라고 했고 그 후로 아들과는 계속 전화로 연락을 했습니다.

영희: 중국에 있는 아들은 아빠도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기 때문에 잘 살 거다 내가 없어도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3년이 지나고 5년 그리고 10년째 되니까 작은 눈송이 같은 그런 상처가 이제는 암 같은 상처로 더 커지는거에요 그동안 통화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연락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중국집에서는 아들을 아예 주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고 그동안 아들의 마음속에 엄마가 너를 버리고 도망 갔다는 인식을 많이 주기 때문에 전화를 하더라도 감정이흐르지도 않고, 이제 엄마는 나를 상관하지 말아라 이런 상태로 계속 몇 년을 전화 통화를 한 거에요

영희 씨는 더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아들을 찾기 위해 지난해 중국으로 가서 아들을 만났다고 하는군요

영희: 10년만에 아들을 보러 갔는데 아들이 엄마를 안고 싶고 엄마의 애정을 갖고 싶었지만 옆의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체질화가 되었는지 엄마가 갈때 까지 눈물 한방울 안흘리고.. 그래서 다시 헤어져 돌아왔어요

중국 시집에서는 절대로 안 보낸다는 군요 영희 씨는 중국의 아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라고 하루라도 데려다 같이 살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영희: 엄마 없이 10년 넘은 세월 혼자서 살아온 아들, 정말 미안하고 미안한 엄마지만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지만 더 당당한 엄마가 되도록 기대해 주기를 바라겠어.

중국의 자녀를 찾는 통일맘 회원 중의 주아라 씨는 기자회견에서 중국에서 낳은 자녀를 한국에 오는 과정에 지인에게 잠시 맡겨 두었는데 한국에 와서 탈북민 교육을 받고 한국인으로 중국 방문 비자로 아이들 찾으러 갔더니 아이를 이미 팔아 버렸다며 눈물을 흘립니다.

아라: 아이의 신분을 확인도 하지 않고 어떻게 넘겨 버렸는지요 지금도 아는 사람들을 통해 찾으러 다니고 있어요 어디서 무엇을 먹고 사는지 살아 있다는 것 만 알아도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지는 않을거에요

이번에는 영국에 정착해 유럽 북한 인권 연합 (EARHNK) 에서 활동하는 박지현 간사, 역시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아들을 둔 채 북송 되었습니다. 당시 인신매매의 현장에서 단지 탈북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수모와 고통을 받았던 그 현장을 증언합니다.

박: 저는 그때 5명이 방 두 개가 있는 집에 같이 있었는데 서로 얘기도 못했어요 어디서 왔는냐는 것 조차 물어보지 못하고 브로커들이 한 여자씩 방으로 데려가서 성 폭행을 하는 거에요. 그러다 여성을 살 사람이 나타나면 값을 흥정하는데 나이가 어릴수록 (어린애들부터) 값이 비싸요 저는 그때 30 살이었는데 중국 돈 5천위안에 팔려갔고 저하고 같이 있던 40대 여성은 제가 팔려갈 때 거의 마지막까지 안 나왔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어딘 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팔려간 북한 여성들은 그 마을 주민들이 감시를 하기 때문에 안부 조차도 물을 수 없었던 생활은 정말 처참했다고 증언 합니다.

박: 제가 팔려가서 살던 마을에도 북한 여성들 5명이 팔려 왔는데 가끔 길에서 서로 만나도 말을 못해요 동리 사람들이 감시를 철저하게 해요 참 처참했어요

바로 성폭행 그 자체만으로도 탈북 여성들은 거의 인간이 아니었다고 증언합니다.

박: 거기 북한 한 여자는 남자 두 명에게 팔려가지고 그 여자는 집에 있는데 몸에 실 오라가 하나도 거치치 못하게 한다고 해요 도망 칠가봐 (남자 둘이서 합작으로 산 거죠) 한 사람이 사기에 돈이 안되니까 두 사람이 말하자면 자기네 성 노리게로요

박 간사는 북송된후 북한 감옥에서 고문과 영양실조로 거의 죽게 되었을 때 풀려나지만 다시 중국으로 탈출합니다.

박: 아들 때문이라도 무조건 살아야 한다는 각오로 또 다시 중국으로 탈출해 친척집에서 몸이 좀 회복 된 뒤, 아이를 데릴러 가는데 납치 하는 것 처럼, 아이가 밖에서 혼자 놀고 있는 것을 아니까 집주인들이 알게 되면 저도 잡혀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저를 직접 돈을 주고 샀던 사람들이라 다시오면 묶어 두려고 다시 내놓겠어요?

박 간사는 당시 아들을 못 알아 볼 정도로 북한의 꽃제비, 거리의 거지같았다며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합니다.

박: 손이 다 트고 갈라지고 추운 겨울인데 동복도 안 입히고 집안에 사람도 없고 밥도 주지 않고 그러니까 강 주변을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먼데서 내 아들을 보았을 때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진짜 아… 내가 갈 때 겨울 동복 하나 가지고 간 것 입히고 모자 씌워서 내 자식 데려 오는 것도 도망치다시피 숨어서 데리고 왔어요

여성의 부끄러운 과거를 다 들어내며 증언을 하고 아들을 찾아온 자신의 얘기가 이런 상황의 탈북 여성들 에게 용기와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증언을 멈출 수 없다고 박지현 간사는 강조합니다.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기사출처 : 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woman_era/womenera-12292016112147.html?searchterm:utf8:ustring=%EA%B9%80%EC%A0%95%EC%95%84]